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는 탈식민주의 문학 비평, 비교문학
및 문화연구, 지식인 비판 및 정치철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서적이에요. 그리고
이 서적에서 카뮈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유명해요. 단순히 '탈식민주의'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문학에서 다른 사회 구조적 접근 및
비평 방법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카뮈에 대한 비판 -
특히 소설 '이방인'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문학 비평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 등에서도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언급되요. 그래서 심지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안 읽었어도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카뮈에 대한 비판은 읽은 사람도 있을 지경이에요. 인문학에서 정말
유명하거든요.
하지만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을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한 비판을 실제 읽었을 때 이게 왜 유명한지 근본적인 문제를 떠올리며
의문을 품게 되요. 왜냐하면 그 해석이 왠지 1인칭 시점 특징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을 단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한 비판을 읽었을
때 바로 1인칭 시점에 대한 무지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요. 더 문제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아랍인의 배경화'를 문제삼았지만,
이게 1인칭 시점 고유의 특징인 ''나'의 세계 인식만이 주관적 사실'이라는
서술 한계를 뛰어넘는지에 대해서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아랍인은
배경에 불과하다'라는 말만 했을 뿐이에요.
이는 문학계에서 너무나 상식적인 수준의 문제라서 실제로 이 문제를 제기하며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제로 시도도 많이
이뤄졌어요. 그렇지만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한 읽는 방식 - 해석
방법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이 등장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이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잘 몰라요. 그저
'에드워드 사이드는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 '아랍인의 배경화와 익명화에 대해
비판했다'고만 아는 정도에요. 자칭 전문가, 비평가라는 사람들조차 대부분이
이 선에 머물러 있어요.
아무리 에드워드 사이드가 문학 비평에서 혁신적 관점을 제시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심각한 근본 문제가 있다면 새로운 관점 제시 전에 타당성으로 그
주장이 무시당하고 비판당하고 매장당해야 정상이에요.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에드워드 사이드는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 '아랍인의 배경화와 익명화에 대해
비판했다'는 사실과 의의가 매우 크고 중요하게 받아지는 데에는 이방인에 대한
문학계의 어떤 암묵적인 규칙에 부합했기 때문이에요. 이 점이 매우 안 알려져
있어요. 오늘날 이방인을 읽는 모두가 엄청나게 큰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둘을 연관지어서 생각을 못 하고 있어요. 기괴할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요.
에드워드 사이드 이전의 이방인 해석 문제 -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어디로?
책을 어떻게 해야 똑바로 읽은 것인가?
해석의 자유는 있어요. 그러니 일반인에서부터 학계까지 절대적인 해석의 자유
허용 범위에 대한 기준이 있어요.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해도 이 기본적인
기준을 못 맞추면 '오독'이라고 비난당하고 무시당해요.
그 암묵적인 규칙이란 바로 '특정 해석 방법, 관점으로 통합 해석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요. 각자 다양한 관점에 따라 읽을 수는 있지만,
오독이 아니기 위해서는 그 관점에 따라 소설 전체를 일관되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전체 맥락에서 딱 한 장면만 엉뚱한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좋은 독서라고 인정 못 받아요. 어떤 관점이든 상관없지만, 그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전체를 해석하는 통합 해석 모델을 만들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해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텍스트 내부 논리적 일관성'은 지켜야
해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해석 최대 난제는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문제와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 문제에요. 이 둘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실제로 이 두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치열한 문제에요.
이 두 문제를 명쾌히 설명할 수 있는지가 어떻게 보면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한 통합 해석 모델 구축의 핵심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나머지는
각자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데, 이 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에요. 이 두 문제만 일관된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방인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어요.
문제는 1부 6장에 있어요. 바로 아랍인 살인사건이에요. 사람을 죽였다면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엄청나게 커요. 그런데 2부를 보면 아랍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뫼르소의 죄책감이 등장하지 않아요.
이로 인해 통합 해석 모델 구축에 상당히 큰 문제가 발생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마지막을 해석하냐는 거였어요.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아요.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문제
1부 6장 아랍인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정상인 관점으로 본다면 감당 못할
엄청난 죄책감이 발생해요. 그런데 정작 2부의 뫼르소는 너무나 잘 살아요.
너무나 멀쩡해요. 단순히 감각적 인간에서 철학적 인간으로 급변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에요. 본질적으로는 '이상한 사람'에서 '죄책감이 없는 상종 못 할
인간'으로 변해버린다는 거에요. 1부 1장이 충격적이라 해도 2부는 선을 완전히
넘어버리기 때문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인간'이라는 성격을 유지하면 오히려
일관성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해요. 어머니의 사망에 대해서 '죽은 자를
슬퍼한다 해서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합리성과 '내가 죽인 사람에 대해
미안해하더라도 그는 살아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라는
뻔뻔함은 차원이 다른 문제에요.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 문제
1부 6장 아랍인 살인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마지막에 이
죄책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전혀 설명이 안 되요. 죄책감이 있다면 정상적인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 때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되요. 즉, 뫼르소의 카뮈 철학적 부조리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되고, 카뮈 철학적 부조리 극복이란 이 살인에 대한 죄책감의 극복이 되어야
하는데, 부조리의 끝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부조리를
극복한다는 게 윤리적으로 납득이 아예 안 된다는 거에요. 이건 말 그대로
범죄자의 합리화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이 없다고 해석하면 뫼르소는
졸지에 '특수한 인간'이 되요. 제목 그대로 완벽한 '이방인'이 되어 버려요.
이러면 카뮈가 밝힌 대로 뫼르소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우리와 다른 인간이 되요.
그래서 이방인 해석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갈라졌어요. 바로 허무주의적 해석
(카뮈의 철학적 해결 구현 실패한 인간)과 부분 해석 접근법이에요.
에드워드 사이드 이전의 이방인 해석 - 부분 해석 접근법과 허무주의적 해석
에드워드 사이드 이전의 이방인 해석은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문제와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 했기
때문에 크게 부분 해석 접근법과 허무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이었어요. 사실상
전부 여기에 해당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에요.
부분 해석 접근법
부분 해석 접근법은 1부와 2부의 캐릭터 특성 연속성을 사실상 부정해요.
1부는 감각주의자를 묘사한 것이고, 2부는 철학적 인간을 묘사한 거라 봐요.
2부에서 뫼르소가 죄책감이 없는 이유는 카뮈가 자신의 철학을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요. 그리고 법정에서의 뫼르소,
판결 후의 뫼르소도 다시 나눠서 해석하는 편이에요. 이 부분에서는 카뮈
철학이 이런 식으로 구현되었고, 저 부분에서는 카뮈 철학이 이런 식으로
구현되었다는 식이에요.
이 접근법의 장점이라면 각각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해석한 후에 이어붙이면
나름의 해석이 되기는 해요. 문제는 매끄럽게 이어지지가 않아요. 더욱이 1부와
2부의 캐릭터 특성 연속성을 '작가가 철학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해석해버리기 때문에 작품성이 떨어져버리는 문제가 발생해요.
더 나아가 독자들이 전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방법이에요. 독자들은 캐릭터
일관성을 원하는데 이렇게 보면 1부와 2부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나눠서 봐도
되거든요. 게다가 특유의 억지로 이어붙인 것 같은 찝찝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요.
허무주의적 해석
허무주의적 해석은 1부 6장 사건 자체에 큰 의미를 주지 말자는 쪽이에요.
쉽게 말해서 뫼르소는 이치에 맞지 않게 운 없이 사람을 죽인 거고, 재판은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하게 돌아가고, 뫼르소는 이런 엉터리 재판에
희생당하며, 마지막에 삶은 뭐 다 그런 거지 체념, 포기, 달관의 자세로 사형을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거에요. 즉,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의 연속이라고 봐버리는
거에요.
이 해석의 강점이라면 1부와 2부 사이의 뫼르소 성격 변화가 나름대로 설명이
되요. 본인 입장에서도 어이없는 일을 겪은 거고, 재판은 자기 기준에서
엉망으로 돌아가고, 결국 자기는 어이없게 사형을 당하는데 이걸 허무주의
방식으로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거니까요.
이 방법의 강점은 독자들이 원하는 캐릭터 일관성이 꽤 잘 유지된다는
점이에요. 대신에 문제는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을 완전히
포기해야 되요. 부조리를 극복하고 그 상황에 저항하는 자신이 어떻게 해도
해석이 안 나오거든요.
요약하자면 카뮈의 이방인 2부에서 사라진 죄책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명쾌히
서술하지 못 했고, 이에 대한 그나마 받아들이기 쉽고 그럴싸한 해석은
허무주의적 해석이었어요. 그래서 카뮈의 이방인은 허무주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는 허무주의의 아이콘이 되었어요. 작가인 카뮈는 이방인이 허무주의
소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극히 혐오했지만, 이게 그나마 대다수가 일반적으로
이방인을 읽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었어요. 허무주의 소설로 읽으면 최소한
1부와 2부 사이의 캐릭터 일관성은 유지되니까요.
물론 어떻게 봐도 첫 발 발사와 이후 두 번째 4발 발사 사이의 간극 문제를
명쾌히 설명은 못 했어요. 그러나 이건 양쪽 모두 '문학적 장치'라는 전가의
보도로 대충 어물쩍 넘겨버렸어요. 허무주의적 해석이 이쪽에서 강점을 가진
이유는 첫 발 발사와 두 번째 4발 발사 사이의 간극의 인과성을 무시해버리면
되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보면 뫼르소는 '비고의성 우발적 살인으로
인한 부조리의 희생자'로 '억울하다'는 감정을 갖게 되며, 1부와 2부 사이
캐릭터 일관성이 유지되는 해석이 되었어요.
에드워드 사이드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한 비판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서는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해요. 상당히 공격적이고 충격적일 수준으로 강하게
비판했어요.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 2장 통합된 비전에서 아예 한
섹션을 통째로 카뮈를 비판하는 데에 할애했어요. 단, 여기에서 공격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상당히 단호한 말투로 비판을 가했다는 거에요. 학문적
글쓰기에서는 단호할 수록 공격적이거든요. '공격적', '맹렬한' 등을 진짜
감정적인 표현 사용하며 비난했다고 이해하면 안 되요.
여기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기한 비판은 다음과 같아요.
첫 번째, 아랍인의 배경화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방인에서 아랍인은 이름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음을
지적했어요. 이게 그 유명한 '아랍인의 배경화'에요. 아랍인은 뫼르소와 사건
속에서 서사적 장치 역할만 수행한다는 점을 비판했어요.
두 번째, 제국주의적 시선 강화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방인의 서사가 식민지 억압을 자연스럽게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했어요. 뫼르소 시점과 철학적 부조리
서사는 식민 현실 속 피식민자의 고통을 문제화하지 않고, 무심하게 소비된다고
비판했어요. 식민지 알제리에서의 아랍인의 삶은 고의적으로 보이지 않게
처리되었음을 지적했어요.
법정과 폭력 묘사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랍인 살해 재판에 대해서 재판에서 아랍인의 죽음이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의미화되지 않았음을 지적했어요. 이방인 텍스트가
철학적 문제만 탐구할 뿐, 제국주의적 폭력과 억압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음을
비난했어요.
정치적-역사적 맥락 무시
에드워드 사이드는 카뮈가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으로, 식민 현실을 사실상
무시하고 철학적 실존 문제만 다루었다고 강력히 비난했어요. 이방인이란 식민
현실을 배경화하고, 유럽 중심적으로 철학과 서사로만 읽게 만든 작품이라고
주장했어요.
에드워드 사이드는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서 강력히 비난했어요. 그런데 이
비난을 그대로 보면 위에서 말했듯 1인칭 시점의 특성을 간과한 억지 논리 같아
보여요. 1인칭 시점 소설에서는 기본적으로 소설 속에 존재하는 정보는 모두
화자인 '나'가 인식한 것이에요. 즉,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아랍인과
통성명하거나 그 이전부터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는 말이 없다면 뫼르소가
아랍인의 이름을 모르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에요. 이렇게 얼핏
보면 아주 확실한 약점이자 허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억지 논리, 트집잡기가
섞인 주장이에요.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방인에 대한 비판의 아이러니 - 통합 해석 모델 구축의 기본 조건 제공
에드워드 사이드는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알베르 카뮈에 대해 아예 한
섹션을 통째로 할애해서 신랄하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공격했어요. 그리고 이
비판의 중심이 된 소설은 다름 아닌 이방인이었어요.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카뮈의
이방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설이에요. 또한 이방인은 카뮈에게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해요. 문학계에서 열심히 읽히고 있는
소설이며, 활발히 논쟁이 벌어지는 소설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런 소설을
강력히 공격했으니 당연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간단히
말해서 어그로 제대로 끌었어요. 게다가 이 논조가 상당히 공격적이에요.
자신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카뮈와 이방인을 공격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 한데, 무려 2장에서 한 섹션을 할애해서 목차에서부터 등장하고,
그 어조가 상당히 공격적이었기 때문에 어그로를 못 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당시 알베르 카뮈는 일종의 '성역' 이미지가 있었어요.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레지스탕스에 가담했어요. 그래서 양심적 지식인의
상징이었어요. 그런 카뮈에게 제국주의자라고 도발과 공격을 가한 것은 단순히
문학적 차원이 아니라 도덕-윤리적 차원의 공격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큰
관심을 끌었어요. 관심을 끈 정도가 아니라 감정적 분노를 야기했어요.
더 재미있는 점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방인 비판은 얼핏 보면 반박하기
쉬워보여요. 위에서 말했듯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방인 비판을 보면 1인칭
시점의 특성을 간과하고 억지로 공격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에요.
이 때문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방인 비판에 정면 반박하기 위해 그의
주장대로 이방인을 읽어본 사람이 꽤 많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엄청난
아이러니가 발생했어요.
에드워드 사이드 관점으로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읽으면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문제와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 문제가
해결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 제2장 7절에서 이방인을 맹렬히 비난하고
공격했지만, 자신의 관점으로 이방인을 접근했을 때 어떤 통합 해석 모델을
만들 수 있는지까지 밝히지는 않았어요. 또한 분명히 허점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구요. 실제 읽어보면 의외로 허술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위에서
밝혔어요. 바로 1인칭 시점 특성 간과로 여겨질 만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을 치명적으로 붕괴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해석은
억지라고 반박하는 것이며, 이렇게 반박하는 완벽한 방법은 바로 통합 해석
모델을 만들 수 없다고 증명해버리는 것이었어요. 쉽게 말해서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대로 '뫼르소의 아랍인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라고 해석했을 때 이방인
해석이 엉망진창으로 나올 수록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이 틀렸음이 강력히
입증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대로 이방인을 읽기를 시도한 사람들이 실제 꽤
많았어요. 이방인 해석이 엉망진창으로 나온다면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은
자신들의 우상인 카뮈를 지킬 수 있는 최고의 학문적 공격, 논리적
공격이니까요.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대로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다면 여기에서 핵심은
'뫼르소의 아랍인 살인에 대한 죄책감 부재'에요. 에드워드 사이드의
비판대로라면 소설 전체에서 아랍인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고 해석해야
하며, 이는 뫼르소 역시 아랍인을 인격체로 부정한다는 가정으로 이어지고,
인격체가 아니라면 살인도 성립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뫼르소의 아랍인
살인에 대한 죄책감 부재'가 유도되요.
이방인에서 아랍인은 인격체가 아니가
-> 뫼르소는 그를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 인격체가 아닌 대상에 가한 행위는 살인이 아니다
-> 뫼르소의 아랍인 살인에 대한 죄책감 부재
사람들이 이렇게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대로 '뫼르소의 아랍인 살인에 대한
죄책감 부재'를 기반으로 카뮈의 이방인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여기에서
엄청난 대반전이 일어났어요. 카뮈의 이방인 최대 난제인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문제와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 문제가 해결된
거에요. 더 나아가 이 문제가 해결되며 통합 해석 모델 건설이 가능해져 버린
거에요.
1. 1부 6장 아랍인 살인 사건의 해석
- 뫼르소는 아랍인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 인간이 아닌 대상에 총을 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 여기에서 어떤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 총을 발사한
것인데?
- 뫼르소의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로 소거됨
- 죄책감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게 살인만큼 무거운 죄책감은 아님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대로라면 1부 6장 살인 사건 해석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쏘는 행위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야기하지 못해요. 이러면 1부 6장 아랍인
살인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도 별 상관이 없어져요. 첫 발을 고의로 쐈든,
우연히 쐈든 하나도 안 중요하고, 이후 4발도 어떻게 쐈든 어떤 심리로 쐈든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살인'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요. 이 장면의 해석에 대해 그저 '뭔가에 대해 쐈다' 이 정도의
해석에 머물러도 된다는 거에요.
2.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 아랍인을 사람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도덕-윤리적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 죄책감이 없다고 가정하면 성격 변화가 큰 문제가 안 된다
- 감각주의자에서 내면에 대한 집중으로의 변화가 그저 슬기로운 감방생활
정도로 바뀐다 (단순히 거주 환경과 거주 공간의 변화로 해석
가능해진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에 입각해서 본다면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못 느껴요. 죄책감을 느껴도 살인에 대한 죄책감 수준은 아니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가벼운 죄책감이에요. 위에서 뫼르소의 성격 변화에
대해 뫼르소가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 1부와 2부 뫼르소 성격 차이는
윤리 파탄 여부에요. 이 차이는 엄청나게 커요. 하지만 아랍인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소거 또는 경감시킨다면 이제 성격 변화 문제는 거주 환경 및 거주
공간 변화로 인한 설명 정도로 해결할 수 있어요. 뫼르소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깊은 생각을 하는 것도 모두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독방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설명하면 되거든요. 이러면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자는 카뮈 철학과 맞아떨어져요.
3. 재판 과정과 이와 관련된 뫼르소의 모습
- 별 거 아닌 일을 대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 모두가 아랍인을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 않으니까!
- 이러면 이 재판이 갖는 불합리성과 부조리가 극명히 드러난다
- 뫼르소는 원래 가벼운 처벌을 받아야 하나, 전혀 엉뚱한 이유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받기 때문이다
- '사회의 폭력과 강요'가 뫼르소가 겪는 부조리가 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에 입각해서 본다면 뫼르소가 자신의 재판에
무신경하고 무감각해보이는 것에도 상당히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설명이
가능해져요. 왜냐하면 별 거 아닌 잘못이기 때문에 당연히 형량도 가벼운 게
나올 거거든요. 재판에서 검사가 뭐라고 하든 말든, 어머니 장례식에서 보인
모습에 대해 떠들든 말든 별 상관 없어진다는 거에요. 또한 재판을 완전히
변호사한테 맡겨버리는 것 또한 이러면 설명 가능하며, 재판 내용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신경쓰는 모습도 설명이 가능해요. 더 나아가, 사형을
언도받는 장면은 그 부조리함이 폭증해요. 또한 뫼르소가 겪는 부조리라는 것이
'사회의 폭력과 강요'라고 매우 명확해져요.
4. 마지막 해석
- 부조리가 사회통념상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뫼르소의
카뮈 철학적 해결 또한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 사회적 폭력과 강요에 대한 좌절에 대한 카뮈 철학적 해결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 또한 사형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사회의 폭력과 강요에 굴하지
않음으로써 카뮈 철학의 저항이 완성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에 입각해서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에 대한 죄책감을
소거 또는 크게 경감시키면 뫼르소가 느끼는 부조리도 사회통념상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수위가 낮아져요. 재판에서는 사회가 강요하는
어머니 사망에 대한 슬픔 표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사형을
언도했어요. 자신의 목숨을 사회적 강요 및 사회적 폭력으로 잃어야 하는
상황은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요. 죽음은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이 죽음을 억울하게 당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런 절망적 상황을 직시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나름의 삶의 의미로 삼을 것을 찾아낸다면 카뮈
철학적 해결이 완성되요. 또한 맨마지막 문장 역시 이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겠다는 결의로 읽는다면 카뮈 철학의 저항까지 완성되요.
에드워드 사이드 비난하려고 에드워드 사이드 비난대로 읽었는데 오히려
난제들이 해결되고 이방인의 문학적 가치가 올라간다?
진짜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원래 목적은 에드워드 사이드를 비난하기 위한
에드워드 사이드 관점에 맞춘 독서법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어이없게도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대로 제국주의에 맞춰서 아랍인을 물신화시켜버리면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에 대한 죄책감이 소거 또는 크게 경감되고, 이러면 이
소설의 문학적 가치가 크게 올라가요. 그동안 설명할 수 없었던 1부와 2부의
캐릭터 성격 변화 문제-도덕 파탄으로의 변화 문제가 해결되며, 부조리가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위로 낮아지면서 독자들이 뫼르소가 겪는
사형이라는 비극에 대해 정서적 공감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요. 또한 카뮈가
그토록 강조했던 저항의 실체가 분명해져요.
이러면 이방인의 문학 가치는 상당히 높아져요. 1부와 2부를 아예 다른
소설처럼 여기든가 인과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야 하던 것에서 상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유지되는 소설이 되니까요. 더 나아가 이방인에 대한 강력한
통합 해석 모델이 완성되요.
대부분이 잘 모르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 저서에서의 오리엔탈리즘 관점에 입각한 카뮈 이방인 비판이 이방인 비평과 해석에서 중요한 진짜 이유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에
대한 비판을 보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카뮈와 이방인을 격렬히 공격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견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대로 이방인을
해석하고 통합 해석 모델을 제시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방인의 통합 해석 모델을 직접 제시한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런 걸 만든
적도 없구요. 그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카뮈와 이방인이 지극히 제국주의에
입각했다고 신랄하게 공격했을 뿐이에요. 이 근거로 이방인 소설 속 아랍인의
배경화, 물신화를 제시했구요. (다른 비판과 공격도 있지만 핵심은 아랍인의
배경화, 물신화에요)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에 입각해서 이방인을 보면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에 대한 죄책감은 소거 또는 크게 경감되며, 이러면 역설적으로 이방인의
최대 난제인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변화' 문제와 '마지막의 카뮈 철학적
해결 구현 증명' 문제가 해결되요. 사실 이렇게 에드워드 사이드 주장대로
사람들이 읽기 시작한 건 에드워드 사이드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박하기 위해서였는데 난제가 풀린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해버린 거죠.
그래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은 카뮈의 이방인 해석에 무지막지하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이때 이후로 이방인 해석에서 식민지 알제리 상황에 대한
고려는 사실상 기본 전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에요. 이방인에 대해 식민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는 에드워드 사이드 이전에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식민지 알제리 상황의 특수성을 기본 전제로 삼게 된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에 나오는 알베르 카뮈 및 그의 소설 이방인에 대한 비판
때문이에요. 에드워드 사이드가 직접 이렇게 하면 이방인의 난제들이 해결되고
통합 해석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은 없으나, 그의 주장에 따라서
이방인을 식민지 지배자 관점에서 쓰인 책이라 보면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에
대한 죄책감을 매우 타당한 이유로 소거 또는 크게 경감시킬 수 있고, 이러면
이방인이 매우 1부와 2부의 뫼르소 성격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2부의
뫼르소 행동과 그가 겪는 부조리가 명확하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하며 깔끔하게 읽히는 소설이 되기 때문이에요.
이 때문에 이방인 해석 및 비평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흔히 오리엔탈리즘
관점에 입각한 비판적 시각으로 알려져 있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로는 해석의 전제 자체를 바꿔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단
'식민지 알제리의 특수성'을 언급한다면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모두 에드워드
사이드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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