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4가역 중부시장 원조 굴비 골목

밤새 열심히 서울을 돌아다녔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정신은 더 맑아졌어요. 오히려 의정부에서 밤에 출발할 때보다 더욱 컨디션이 좋아졌어요. 이유는 저도 몰라요. 소위 말하는 러너스 하이 상태에 들어온 건 아니었어요.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 동안 걸었으니까요. 계속 걷는데 계속 재미있었고, 지쳐야 하는데 하나도 안 지치고 오히려 힘이 났어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소.

보통 때면 집에 돌아갔을 시각이었어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어차피 집에 돌아간다고 해서 할 것도 마땅히 없었어요. 집에 돌아가면 아마 쌓여 있던 피로가 한 번에 폭발할 거였어요. 피로가 폭발하면 그대로 자리에 뻗어서 잠들 거였어요. 그 후 어쩌면 다음날 내내 정신 못 차리고 빌빌 거릴 수도 있었어요. 일찍 돌아가나 늦게 돌아가나 똑같을 건 분명했어요.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까요.

"계속 돌아다녀야지."

어차피 다음날은 하루 종일 정신 못 차리고 피곤해할 게 확실했어요. 그럴 바에는 컨디션 좋고 돌아다니는 재미 아주 쏠쏠할 때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니는 것이 나았어요. 돌아다니다가 영상 촬영할 만한 거 있으면 영상 촬영하면 되고, 글 쓸 만한 소재 찾으면 사진 촬영하며 글감을 수집하면 되었어요. 오늘 이 순간을 최대한 많이 즐겁게 즐기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어차피 내일은 없으니까.
내일이 없다면 오늘 불살라야지!

이번에 걷고 있는 길은 을지로였어요. 밤에 종로를 걸었기 때문에 갔던 길 그대로 걷지 않고 을지로로 걷고 있었어요. 을지로는 자주 가기는 하지만, 을지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은 일은 별로 없어요. 을지로를 자주 가게 된 것도 을지로가 '힙지로'로 뜨면서부터였어요. 그 전에는 을지로를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았어요. 가더라도 명동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을지로1가 정도만 다녔어요. 아니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을지로로 살짝 들어갔다가 종로로 나왔구요.

'나 을지로 많이 다니지 않았나?'

을지로를 걸어다닌 일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한때 을지로를 정말 많이 지나갔어요. 아주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버스를 타고 대학교를 통학한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제가 타고 다닌 버스는 을지로를 지나가는 버스였어요. 남대문시장에서 을지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후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흥인지문으로 가는 버스였기 때문에 한때 을지로는 버스 타고 거의 매일 지나다니던 길이었어요. 물론 엄청나게 오래 전 일이지만요. 대학교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요.

근래에는 서울에서 놀 때 을지로를 종종 가곤 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을지로는 낯익으면서 낯선 곳이에요. 나름대로 자주 가니까 낯익은 곳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을지로는 제게 매우 낯선 곳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을지로 길 자체야 잘 알고 익숙한 길이지만, 을지로 양옆으로 매우 좁은 골목길이 많이 있어요. 이 골목길들 역시 여러 번 가보기는 했지만 길이 익숙하지 않아요. 게다가 자주 가지 않고 듬성듬성 가다 보니 길이 아직도 눈에 익지 않았어요. 가더라도 주로 밤에 가는 것도 있구요. 밤에 가서 돌아다니고 낮에 와보면 완전히 달라보여서 길이 꽤 헷갈려요.

을지로를 따라 걸어가는 중이었어요. 을지로를 따라가다 보면 시장이 나와요. 바로 중부시장이에요. 중부시장은 한때 참 많이 가던 곳이었어요. 중부시장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생각나네.'

을지로를 걸으면서 예전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을 때를 떠올렸어요. 나름대로 좋은 추억이었어요.

어느덧 을지로4가역 9번 출구까지 왔어요. 여기에서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어? 여기였구나!"

을지로4가역 9번 출구에서 골목길로 들어가자 중부시장 원조 굴비 골목이 나왔어요.




아주 예전에 심야시간에 중부시장을 돌아다니던 중이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중부시장 안에서 제가 안 가본 곳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굴비 많네?"

그때 굴비 골목을 처음 가봤어요. 굴비 골목에는 굴비가 매우 많았어요. 심야시간인데 굴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곳도 있었어요. 가게마다 굴비가 매달려 있었고, 커다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어요.

"여기 나중에 다시 와봐야겠다."

'나중에'의 의미?
'나중에'는 '안 하겠다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가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나중에'라는 말은 '안 하겠다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이기도 해요. 나중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나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몇 번 했지, 실제 찾아가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심심해서 찾아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못 찾았어요. 물론 이것은 의지의 문제였어요. 지도에서 검색해서 찾아가면 되는데 지도에서 검색할 의지가 없었거든요. 중부시장 돌아다니다 나오면 가고, 안 나오면 그냥 간다고 생각하고 갔다가 안 나와서 중부시장 원조 굴비 골목을 가지 않고 그냥 갈 길 가버렸어요.

중부시장에 원조 굴비 골목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몰랐어요. 그저 한 번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해서 스쳐간 것이 전부였어요. 이날 드디어 서울 중부시장 원조 굴비 골목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되었어요. 을지로4가역 9번 출구였어요.




중부시장에서는 굴비 만들기 위해 조기를 씻는 작업중인 가게가 있었어요.

중부시장 원조 굴비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했어요.




서울 중부시장은 1957년에 설립된 시장이에요. 이름이 '중부시장'인 이유는 1957년 당시에 남대문시장 상권과 동대문시장 상권을 나누기 위해서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해요. 또한 이쪽이 서울 중부 지역이기도 하구요.

서울 중부시장은 1960년대 중반 무렵에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의 건어물 상인들이 중부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건어물 전문 시장으로 자리잡았다고 해요. 그리고 현재도 서울 중부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큰 건어물 시장이에요.

서울 중부시장이 가장 크게 번성한 시기는 1980년대에 굴비 열풍이 불었을 때라고 해요. 국민 생활 수준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좋고 맛있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때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 굴비 열풍이 불었다고 해요. 이 당시만 해도 전라남도 영광군에는 굴비 공장이 몇 곳 없었어요. 그래서 전라남도에서 생산된 굴비가 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일 보다는 영광 법성포와 목포 등지에서 생산된 조기를 냉장 또는 염장해서 서울로 올려보냈고, 이렇게 전라남도에서 올라온 냉장 또는 염장 처리된 조기를 서울 중부시장에서 엮어서 굴비로 만들어서 판매했다고 해요.

1980년대에는 중부시장이 서울 지역 굴비 수요를 거의 다 감당했기 때문에 중부시장이 매우 번창했다고 해요.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지방 여러 지역에서 굴비를 엮기 시작했고, 상권도 소매상권에서 대형 마트로 넘어가며 중부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요.

이후 중부시장은 2014년에 시장 천장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시설 현대화 작업을 진행했어요. 시설 현대화 작업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일평균 이용객 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해요.




아래 영상은 이날 촬영한 서울 을지로4가역 9번 출구 중부시장 원조 굴비 골목 영상이에요.




서울 중부시장은 지금도 건어물 시장으로 상당히 규모가 크고 유명한 곳이에요. 서울 최대 건어물 시장인 만큼 고유의 색채도 매우 확실해요. 현재는 과거 중부시장의 번영을 가져온 굴비 골목은 시장에서 조금 외곽쪽인 을지로4가역 9번 출구에 있어요. 중부시장 가장 큰 입구와 한가운데는 일반 건어물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구요. 중부시장 가면 매우 다양한 건어물을 구경할 수 있어요.

서울 중부시장은 서울여행 왔을 때 한 번 찾아가서 돌아다니며 구경할 만한 시장이에요. 을지로에서 놀 거라면 들릴 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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