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는 왜 올 때마다 줄 서 있지?"
서울에 놀러가면 시청역을 종종 가곤 한다. 종로에서 놀다가 명동 및 회현동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광화문 광장까지 간 후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으로 가서 소공동을 거쳐서 명동으로 가는 길이다.
종로에서 놀다가 조금 많이 걷고 싶을 때는 이 길로 걷는다. 그래서 서울
시청과 덕수궁 앞은 서울로 놀러갔을 때 종로로 갈 때는 잘 가는 곳 중
하나다.
덕수궁 입구 옆에는 조그마한 와플집이 있다. '리에제 와플'이라는 가게다.
리에제 와플은 실내 매장이 없다. 밖에서 와플을 주문해서 사서 들고 가야 하는
매장이다. 리에제 와플은 앞을 지나갈 때마다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가 뭔데 저렇게 사람들이 줄 서 있지?"
리에제 와플은 매장이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고 엄청 작아서 실내에서 먹을
공간은 아예 없는 곳이다. 게다가 덕수궁 근처는 어디 앉아서 먹기 좋은 장소도
마땅치 않다. 날 좋을 때라면 덕수궁 돌담길 걸으면서 적당히 앉을 자리 찾아서
앉아서 먹으면 될 거다. 하지만 날이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덕수궁 근처는 추위
피할 곳이 진짜 없는 곳이다. 날이 추울 때 뿐이 아니다. 미세먼지 심할 때
역시 잠시 미세먼지를 피하며 먹을 공간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 날이
춥든 덥든 미세먼지가 심하든 안 심하든 항상 리에제 와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엄청 대단한 집인가?"
더욱 신기한 점은 리에제 와플이 덕수궁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에 비해 블로그 글을 본 기억은 정말 없었다.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블로그 글을 몇 번은 보기 마련이었다.
블로그를 하루 이틀 해온 게 아니라서 어지간히 유명한 곳은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런데 리에제 와플은 신기하게 본
기억이 없었다.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블로그 글이 아주 넘쳐나서 안 먹어봐도 리뷰 쓸
정도로 다른 사람들 글을 봤어야 하는데 정작 블로그 글로 본 기억은 없으니
신기하고 희안한 집이었다.
'한 번 먹어볼까?'
리에제 와플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호기심에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줄 서서 기다리기 귀찮았다. 그리고
줄 서서 기다리는 게 귀찮은 것보다 더 문제가 있었는데, 덕수궁 근처에서
앉아서 먹을 만한 공간이 마땅히 없었다. 줄 서서 기다렸다가 와플 구입해서
와플을 들고 다니며 먹고 싶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항상 궁금해하기만 하고
지나쳤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덕수궁 근처에 엄청 맛있는 와플집이 있으니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어디냐고 물어봤다. 리에제 와플이라고 했다. 친구가 말한 가게
이름과 위치가 딱 내가 알고 있던 바로 그 리에제 와플이었다.
친구가 리에제 와플을 먹고서는 너무 맛있으니 반드시 가서 사먹어보라고 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집이고 어떤 와플을 판매하길래 사람들은 매일
줄을 서 있고, 친구는 먹고 와서 내게 반드시 먹어보라고 강력히
추천할까?
줄 서기 싫어요.
걸어다니며 먹기 싫어요.
그러나 그 후로 한참이 지났지만 역시 리에제 와플의 와플은 사서 먹어보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 줄 서서
기다리기 싫었고, 두 번째로 걸어다니면서 먹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리에제 와플은 언제나 궁금하기는 하지만 궁금하기만 한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서울로 놀러가서 길을 걸어다니며 놀던 중이었다. 역시 종로에서 시작해서
광화문 광장을 거쳐 서울 시청으로 걸어갔다. 보통 이렇게 걸어갈 때는
서울시청 바로 옆길로 걸어간다. 그렇지만 이날은 달랐다. 그냥 별 이유 없이
광화문 광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덕수궁 바로 옆길로 걷고 있었다.
역시나 또 리에제 와플이 보였다. 리에제 와플은 덕수궁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찾기 매우 쉽다. 대로변에 있지는 않지만 덕수궁 입구까지 왔다면 금방
발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어? 오늘 줄 없다!"
웬 일인지 항상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리에제 와플에 사람들이
없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 아니면 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겁니다.
리에제 와플에 줄이 없는 건 처음 봤다. 지금이 기회였다. 그래서 바로 리에제
와플로 갔다.
리에제 와플 매장 외관은 허름하게 생겼다. 와플 느낌을 주기 위해 누런빛
페인트로 칠했는데 세월이 흐르며 페인트칠 위에 먼지가 끼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부분도 있다. 페인트칠이 오래되자 엔틱한 모습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실제 건물이 저렇게 아주 낡은 건물은 아닐 거다. 바로 윗층만 봐도 리에제
와플만 저런 걸 바로 알 수 있다.
리에제 와플에서는 와플을 여러 종류 판매하고 있었다.
'플레인으로 먹어보는 게 좋겠지?'
생딸기 와플, 피넛버터 와플, 초콜렛 와플 같은 것도 있었지만 여기에 대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줄을 서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플레인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없으면 진짜 심심할 거였다.
"바닐라? 메이플?"
플레인으로 먹는 건 기껏 온 기회를 너무 소박하게 날려버리는 거였다. 그래도
기껏 먹는 와플인데 토핑을 뭔가 올리기는 해야 할 거 같았다. 플레인에 가까운
와플이라면 메이플 와플이었다.
"메이플 와플에 바닐라빈 생크림 얹어주세요."
메이플 와플에 바닐라빈 생크림. 디저트로 제일 무난한 조합으로
주문했다.
주문 후 덕수궁 돌담 옆에서 기다리자 내 순서가 왔다. 와플을 받았다.
"바닐라빈 많이 들어갔네?"
하얀 생크림에 검은 점이 도도도도 박혀 있었다. 검은 점은 바닐라
빈이었다.
날이 좋아서 시청광장으로 걸어가며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줄 섰구나."
리에제 와플의 바닐라빈 생크림을 올린 메이플 와플은 상당히 맛있었다.
와플은 갓 구워서 바삭했다. 와플 겉은 살짝 바삭한 느낌이 있었고 속은
부드러웠다. 와플을 베어물면 고소한 와플 향이 입안에서 분무기로 뿜어내는
물이 확 퍼지는 것처럼 확 퍼졌다.
와플 자체도 맛있었지만 와플과 메이플 시럽, 바닐라빈 생크림의 조합이
만드는 맛이 매우 맛있었다. 특히 바닐라빈 생크림이 매우 맛있었다. 바닐라빈
생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았다. 매우 고급스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와플 위에 얹어서 먹는 맛이었다. 와플 자체도 맛있었지만 바닐라빈 생크림이
너무 맛있었다. 플레인 와플 자체만 놓고 보면 맛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닐라빈 생크림은 정말로 사람들이
줄서서 먹을 만한 맛이었다. 바닐라빈 생크림을 먹을 때마다 달콤한 바닐라향과
부드러운 생크림맛이 한 쌍의 아름다운 커플이 되어서 서로를 꽉 껴안는 모습이
떠올랐다.
리에제 와플의 바닐라빈 생크림을 올린 메이플 와플은 한 쌍의 커플이 서로를
껴안는 맛,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서로를 포옹하는
맛이었다. 와플은 무대가 되고, 바닐라 향과 생크림 맛은 한 쌍의 커플이었다.
여기에 메이플 와플은 이 커플을 향한 따스하고 축복을 기원하는
소리들이었다.
리에제 와플의 바닐라빈 생크림을 올린 메이플 와플 맛은 혼자여도 커플이
되어 축복받는 기분이 드는 맛이었다. 사랑받는 맛이라고 표현하면 될
맛이었다. 햇살 좋은 날 걸어서 돌아다니며 먹으면 세상이 더 따스하게 보이는
맛이었다.
서울 시청역 덕수궁 와플 맛집인 리에제 와플은 서울 덕수궁 앞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지 않다면 또 사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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