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황학동 도깨비 시장 기계상가 골목

서울 중구 신당역으로 심야시간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왔다. 서울 신당역 일대에서 촬영할 만한 곳은 여러 곳 있었다. 신당역 일대는 요즘 서울의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라는 말이 많다. 신당역 북쪽으로 신당동 쌀집거리가 있고, 그 옆에는 서울중앙시장이 있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황학동 도깨비시장이 있다. 그리고 황학동 도깨비시장에서 청계천 주변으로 동묘 구제시장과 동대문 야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는 힙당동 - 신당동은 정확히는 황학동 일대를 말한다. 황학동은 예전부터 매우 유명했던 곳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황학동 도깨비 시장 때문이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시장 경기 상황, 자영업자 문제를 다룰 때 거의 무조건 등장하는 곳이다. 특히 자영업자 문제를 다룰 때는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반드시 나오는 곳이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 자영업자 문제를 다룰 때 무조건 나오는 곳일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서울 및 수도권 식당들이 개업 준비할 때 황학동 도깨비 시장으로 와서 중고 집기류를 구입하고, 식당을 폐업할 때 식당 집기류를 황학동 도깨비 시장에 있는 가게들에 넘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기 침체 및 자영업자 문제를 다룰 때 기자들이 황학동 도깨비 시장 와서 황학동 도깨비 시장 풍경을 비춰주고 상인들 인터뷰를 하곤 한다. 거의 정해진 패턴이라고 보면 된다. 마치 한겨울에 한파가 찾아오면 기자들이 가락시장 및 중림시장 가서 상인들이 모닥불 쬐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과 같다.

"이제 황학동 도깨비 시장 어디 촬영할까?"

서울 신당역 쪽으로 와서 광희문, 신당동 싸전거리, 서울중앙시장, 황학동 벼룩시장 영미상가 영상을 촬영했다. 이제 진짜로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할 차례였다.

"한 번에 다 돌아다니는 건 별로인데..."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한 번에 다 돌아다니면서 촬영하려고 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 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렇게 영상을 촬영하면 나중에 영상이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다. 가뜩이나 편집도 전혀 안 하고 자막, 대사 하나도 없이 촬영한 그대로 올리는데 시간까지 길어지면 내가 봐도 솔직히 지루하다. 영상 촬영도 어지간하면 한 번에 쭉 찍어서 올리기 때문에 동선이 너무 길어지면 영상이 지저분해진다.

"황학동이야 몇 번 다시 올 거니까."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구역이 몇 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몇 번에 걸쳐서 각 구역을 한 번씩 가면 될 거였다. 이날 반드시 한 번에 끝장내겠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원체 안 오던 곳이라 이곳 지리가 익숙하지도 않았다.

"기계골목부터 시작할까?"

황학동 도깨비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주방용품 거리다. 주방용품 거리가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서울중앙시장에서 나와서 영미상가를 통과해서 왔다. 바로 앞에 있는 곳은 기계골목이었다.

"오늘은 기계골목 찍어야지."

기계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하고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한국전쟁 이후에 형성된 시장이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 주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청계천 판잣집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서울중앙시장 - 당시 성동시장 근처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 형성되었다.

청계천 판잣집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고물상들도 여기로 모이게 되었고, 인근 미군 부대에서 밀반출한 물품을 판매하는 노점까지 조성되었다.

1960년대가 되자 고물상들이 자리했던 거리는 중고품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돌아다니다 뒤를 돌아봤다. 뒷편으로는 롯데캐슬 아파트가 보였다. 허름한 시장 골목과 높은 롯데캐슬 아파트가 대비를 이루었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골동품상들도 몰리게 되었다.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사람들은 옛날 물건을 많이 버렸다. 그저 새 것이 좋고 옛날 것은 낡고 후진 것이라며 버리는 일이 많았고, 전국의 골동품 상인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골동품을 수집해왔다.

이때를 경험한 어르신들 말을 들어보면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나 사용하던 막그릇을 골동품상이 와서 '스댕 그릇'으로 바꿔주며 가져갔다고 한다. 고서적 같은 것도 이 당시에는 폐지처럼 버려지는 것이 꽤 되었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은 생활의 진보를 부르짖는 운동이었고, 이 당시 버려지던 골동품들은 당시 사람들 기준으로는 그저 낡은 것에 불과했다. 골동품의 가치를 알아볼 정도로 생활수준이 윤택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황학동 골동품 상인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수집해서 도시 중산층들에게 판매했다. 이로 인해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골동품 시장으로 유명해졌다. 황학동 골동품시장은 1980년대 초까지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황학동 골동품 시장은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쇠퇴하게 되었다. 정부에서 관광산업 육성 차원에서 황학동 골동품 시장 상가들을 장안동으로 이전했다. 또한 청계천 고가도로에 포진해 있던 골동품상은 청계천 복구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울시에서 서울풍물시장으로 이전시켰다.

한때 황학동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던 골동품 시장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황학동에서 세가 많이 위축되었고, 본래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 형성되도록 만들었던 중고품이 다시 중심으로 복귀했다.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이름이 여러가지다. 황학동 벼룩시장, 황학동 고물시장, 황학동 만물시장, 황학동 개미시장, 황학동 마지막 시장 등이 있다. 이 중 벼룩시장은 황학동 상인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하는 모습이 흡사 벼룩을 연상시킨다고 붙은 이름이다.






황학동 기계상가 골목에는 중고 모터, TV 같은 것이 보였다. 심야시간이라 많은 물건을 볼 수 있지는 않았지만 가게 밖에 있는 것들은 중고 기계 부품, 난로 등이었다.

서울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동묘 구제시장과 달리 황학동은 아직 핫플레이스라고 청년층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로 중고품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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