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경상남도 통영시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이 친구는 운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친구다. 광적인 수준이 아니라 병적인 수준이라고 해야 맞을 거다. 이
친구를 보면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참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운전면허를 매우
늦게 취득한 후 그때부터 운전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운전을 엄청 많이 했다.
여기에 자기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인
조금이라도 기다리기 싫어서 차를 몰고 가는 성격까지 더해졌고, 체력까지
과거보다 약해지자 더욱 운전에 열광하게 되었다.
친구는 운전하기 시작한 후 운전을 병적으로 좋아하면서 이제는 뭐 말만
나오면 운전 이야기부터 나오는 지경까지 되었다. 여행 가자고 하면 무조건
운전부터 찾아보는 정도였다. 운전 좋아하는 사람이 자동차 운전 여행을
가기에는 바닷가가 좋다.
친구는 어떻게든 운전해서 돌아다니고 싶어했고, 나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친구는 쏘카를 빌려서 주변 다른 곳을 돌아다녀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해안가는 자동차 드라이브로 여행하기 매우 좋다. 주차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항구나 포구 나오면 잠시 주차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놀다가 다시 이동하면 된다. 친구와 여행할 곳은 해안선을 따라서
다니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루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친구가 쏘카로 들어갔다. 어떤 자동차를 빌릴지 보기 시작했다.
"전에 안 타본 거 타자."
"레이?"
쏘카에 있는 자동차 중 안 타본 차는 레이가 있었다. 나머지 종류는 이 친구와
여행하면서 한 번씩 타봤다. 레이 하나 남았다. 무슨 도장깨기도 아니고 쏘카에
있는 자동차 종류를 하나씩 다 타서 마지막 남은 것이 레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레이 빌려서 여행을 가보자고 했다. 친구도 새로운 차를 몰아본다고
신났다. 친구는 내게 레이는 더럽게 잘 안 나가니까 각오하라고 했다.
다음날, 통영에서 쏘카로 레이를 빌렸다. 차 외관을 꼼꼼히 확인한 후 차에
탔다. 당연히 친구는 운전석에 탔고, 나는 조수석에 탔다. 차량에 탑승했는데
운전석 앞에 스마트폰 거치대가 부착되어 있었다. 별 신경 안 썼다. 쏘카
차량은 원래 진짜 옵션 없는 소위 '깡통 차량'인데 무려 스마트폰 거치대가
붙어 있는 레이였다.
친구가 시동을 켜고 네비게이션을 켰다.
"이거 네비 안 되는데?"
"일단 재부팅하자."
티맵을 보면서 가며 네비게이션을 재부팅하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을 몇 번을
재부팅했지만 네비게이션이 안 되었다. 쏘카 고객센터에 연결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쏘카 고객센터에 연락이 되었다. 쏘카 고객센터에서
알려준 방법대로 해봤지만 여전히 네비게이션은 먹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와 같이 짠 여행 경로로 가는데 식당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외진 곳에 카페 하나 있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친구가 쏘카 고객센터에 연결해서 네비게이션이 여전히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쏘카측에서는 무상으로 차량을 바꿔줄 수 있는데 지금 있는 위치에서는
안 되고 거제시 시내로 들어가서 거기 있는 쏘카존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어떡할래?"
"시내로 들어가자. 가서 차 바꾸고 밥 먹자."
친구에게 거제시 시내로 들어가서 쏘카 차를 바꾼 후 점심을 먹자고 했다.
아무리 봐도 원래 계획대로 갔다가는 점심을 못 먹게 생겼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이 먹통인데다 레이는 오르막길이 조금만 나와도 매우 힘들어했다.
쏘카에서 미안하다고 차량을 무료로 쏘나타로 업그레이드해서 바꿔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거제시 시내로 가자고 했다.
거제시 시내로 들어가서 쏘카 차량을 쏘나타로 바꿨다. 그 다음 밥 먹을 곳을
찾아봤다. 경상남도 왔으면 왠지 돼지국밥을 먹어야할 거 같았다. 돼지국밥을
좋아하는데 서울에서 돼지국밥 잘 하는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온 김에
돼지국밥 먹고 가자고 했다. 친구와 돼지국밥 맛집을 찾아봤다. 거제시
장평동에 '거제돼지국밥'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거제돼지국밥 가자."
이날은 일요일이라 문 닫은 식당이 많았다. 선택지 자체가 별로 없었다.
거제돼지국밥은 평이 좋은 편이었다. 돼지국밥을 먹고 싶었고, 다른 식당은
마땅히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거제돼지국밥으로 갔다.
거제조선국밥은 만석이었다. 게다가 무려 대기까지 있었다.
"여기 엄청난 맛집인가?"
국밥집에 대기가 있어서 놀랐다. 사람들이 줄 서서 대기하고 있는 국밥집은
별로 없다. 국밥이란 음식 자체가 음식을 빨리 먹기 위해 고르는 음식이다.
그런데 그런 한국식 패스트푸드인 국밥집에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자 나와 친구 순서가 되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밑반찬이 나왔다.
"여기 감각 있는데?"
국밥집 반찬 그릇을 보면 대체로 조금 올드한 스타일이다. 많이 올드한
스타일인 곳도 있고, 조금 올드한 스타일인 곳도 있지만, 트렌드를 못 따라가는
느낌이 있는 건 거의 공통이다. 반찬 그릇 선택이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테이블과 받침을 잘못 선택하면 완전히 김밥천국 비주얼이 된다. 여기는
테이블, 쟁반, 반찬그릇의 조합이 꽤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 주면
사진이 확실히 더 예쁘게 나온다. 요즘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사람들이
사진으로 광고하는 시대인데 사진이 잘 나오면 사람들이 더욱 몰리기
마련이다.
반찬을 먹어보았다. 반찬이 하나같이 맛있었다.
돼지국밥이 나왔다. 하얀 국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펄펄 끓는 국물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먹기 시작했다.
"여기 사람들이 대기할 만 하다."
거제조선국밥의 돼지국밥 국물은 매우 고소했다. 그리고 돼지 잡내가 나지
않았다. 역한 냄새는 하나도 없고 고소한 돼지고기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국물이었다. 국물 맛은 사람들과 만나서 기분 좋게 밥 먹고 가볍게 술 한 잔
하고 너무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맛이었다. 과하지 않고 역하지 않았다.
먹는 내내 맛있었고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이 기분이 그대로
유지되는 맛이었다.
나와 친구 모두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잘 먹었다.
"레이가 완전히 보너스 줬네."
친구와 웃었다. 쏘카에서 빌린 레이가 네비게이션 고장이었던 것이 완전히
전화위복이 되었다. 레이 차량을 바꾸기 위해 거제시 시내로 들어와서 훨씬
좋은 쏘나타로 무상으로 바꾸었고, 매우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만약 다른
차량을 빌렸다면 거제조선국밥 와서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식당 찾아 삼만리였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정말로 이날은 돌아다니는
내내 식당 문 열린 곳을 못 봤기 때문이었다.
거제조선국밥은 단순히 배고파서 맛있는 곳이 아니었다. 국물이 정말
맛있었다. 거제도 여행을 다시 간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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