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여수 여행 마지막날이었다. 아직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수에서 돌아오는 날이었지만 여수에서 얼마나 더
돌아다니고 서울로 돌아갈 지까지는 정하지 않았다.
'설마 여수에서 서울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겠어?'
전남 여수에서 기차표 예매를 서두르지 않은 이유는 여수에서 서울로 기차
타고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일이라서
기차표가 많이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기차표 없어서 서울로 올라가지 못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하루 더 있고 싶은데...'
여수 여행이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에 여수에서 하루 더 머무르면서 여행을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기예보는 빨리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태풍
카눈이 북상중이라서 다음날에는 여수도 태풍 영향을 크게 받을 거라고 했다.
이날 오후부터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질 예정이라고 나오고 있었다. 여수는
자정 즈음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고 이미 아침 7시 조금 넘어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차표나 봐볼까?"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코레일톡에 접속했다. 열차를 쭉 봤다. 무궁화호 타고
여수에서 서울 가는 건 진짜 할 짓이 아니었다. 여수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
가려면 소요시간이 5시간이 넘었다. 기차 타고 5시간 가는 거면 엄청 지루한데,
무궁화호는 여기에 연착이 매우 잦다. 아무래도 KTX의 정시성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 새마을호의 정시성이 우선이다. 무궁화호는 가장 뒤로 밀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KTX, 새마을호 열차의 정시성이 틀어질 거 같으면 무궁화호는
무조건 연착이다.
"6시 5분차 타고 가면 되겠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출발하는 KTX 520호 열차가 있었다. 용산 도착 예정 시각은
21시 13분이었다. 이거 타고 가면 집 도착하면 대충 밤 11시 될 거였다. 오후
6시 5분 열차니까 여수에서 충분히 더 놀 수 있었다. 더 뒤에 있는 KTX 열차도
있었지만, 태풍 카눈이 북상중이었기 때문에 너무 늦은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아보였다.
여수엑스포역에서 18시 5분에 출발하는 KTX 520호 열차를 예매하려고
터치했다. 좌석을 고르려는데 좌석이 고작 2개 남아 있었다.
"이게 매진이야?"
깜짝 놀랐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KTX열차는 무려 18량짜리
열차다. 좌석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잔여 좌석이 불과 2개 남아 있었다. 첫
번째 좌석을 봤다. 창가석이었다. 역방향이었다. 창가석에 만족하기로 하고
빨리 예매했다. 이거 놓치면 그 다음에는 머리 아파질 거였기 때문에 고민하고
말고가 없었다.
여수EXPO역에서 18시 5분에 출발하는 KTX 520호 열차는 여수EXPO역에서
서울역을 거쳐 행신역까지 가는 열차다. 서울역에서 내릴지 고민했지만
용산역에서 내리나 서울역에서 내리나 기차에서 내린 후 지하철 1호선 타고
가야 하는 것은 변함 없었기 때문에 용산역에서 내리는 게 더 나았다.
기차표를 예매한 후 여수를 돌아다녔다. 태풍 카눈이 다가오고 있는데 오히려
날씨는 아침보다 좋아졌다. 바람도 잔잔해졌고 비도 멎었다. 태풍 온다고 일찍
올라가는 기차표를 예매했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시간이 되어서 여수EXPO역으로 갔다. 개찰구를 통과해 승강장으로 갔다.
승강장에는 KTX 520호 열차가 정차해 있었다.
나는 1호차였다. 여수EXPO역에서 출발해서 행신역까지 가는 KTX 520 열차는
좌석 기준으로 보면 역방향으로 달린다. 그리고 여수EXPO역 역사쪽이 제일
마지막 객차 차량인 18호차였다. KTX를 끝까지 다 걸어가야 내가 타고 갈 1호
객차 차량이 나올 거였다.
KTX 520 열차 맨 앞까지 와서 사진을 찍었다.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는 작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1호차에는 좌석이 마주보는 4인용
좌석이 없었다.
KTX 520 열차는 좌석마다 USB 단자 2개와 콘센트 1개가 있었다. 창가쪽에만
있기 때문에 충전하고 싶으면 창가 쪽에 앉는 것이 좋은 열차였다.
콘센트 윗쪽에는 옷걸이가 있었다. 옷걸이에 내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10+를
가로로 놓으면 옷걸이 2개가 스마트폰을 받쳐줘서 안정적으로 놓을 수
있었다.
앞좌석에는 뒷면에는 KTX 홍보 잡지가 꽂혀 있었다. 2023년 8월은 원주
특집이었다.
열차가 출발했다. 여수엑스포역과 여천역을 지나갔다. 순천역에 도착한 순간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KTX 520호가 승강장 출발하는 영상 찍어볼까?'
18호차에 탔다면 승강장 전체를 달리는 영상을 찍을 수 있었을 거였다.
1호차는 승강장 제일 앞쪽 끄트머리라 역사를 다 지나간 자리였다. 그래도 한
번 찍어보기로 했다.
순천역
구례구역
곡성역
남원역
남원역을 지나자 날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창밖으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차창에 빗방울이 너무 많이 맺혀서 전주역은 촬영하지 못했다. 전주역
이후부터는 어두워졌기 때문에 촬영해봤자 영상이 까맣게 나올 거였다.
KTX 520호 열차 와이파이는 약간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사용할 만
했다. 남원역 와서부터 신호가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대로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오송역 왔을 때부터였다.
KTX 520호 열차에서의 충전은 중간에 충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충전을 아예 못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용산역까지
소요시간은 3시간이 넘기 때문에 열차에서 충전할 수 있다는 점이 꽤
중요하다.
KTX 520호 열차 좌석은 무난한 편이었다.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객차
내부 소음은 별로 없었다. 흔들림도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좌석 기준
역방향이라 창밖을 보고 있으면 정방향으로 보는 것보다 피곤했다.
KTX 520호 열차는 오후 9시 13분에 도착했다. 기차표에 나와 있던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여수에서 서울로 대중교통을 타고 올라온다면 솔직히 KTX 외에는 답이 없다고
봐도 된다. 왜냐하면 소요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KTX 520호 열차가 특별히
쾌적하고 편안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소요시간이 3시간이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선택지를 이긴다. 순전히 급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새마을호는 4시간,
무궁화호는 5~6시간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간다면 거의 무조건 KTX
타고 간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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