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중심에는 의정부역이 있다. 의정부역 동편 행복로, 중랑천
방향에는 넓은 공터 같은 공원이 있다. 과거에는 진짜로 공터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름 공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지도에서 검색해보면
역전근린공원이라고 나오는 장소다. 이곳은 원래 주한미군 부대가 있었던
자리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내가 의정부에 자리를 잡았을 때에 비해 많이 변화했다.
분명히 더 좋아지기는 했는데 대신에 특색 없는 지역으로 변했다. 의정부는
원래 주한미군 부대와 306 보충대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래서 지리 시간때
의정부시는 서울의 군사 목적 위성도시라고 배우던 곳이었다. 그런데 주한미군
부대는 평택으로 이전했고, 306 보충대는 없어졌다. 그러자 졸지에 특색 없는
도시가 되었다.
'특색 없다'와 '살기 나쁘다'는 동의어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의정부 살기 좋아요!
물론 특색 없는 도시라고 해서 살기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의정부는
거주하기에는 꽤 괜찮은 도시다. 단지 특색이 참 없을 뿐이다. 건강 챙기기에는
나름 좋은 도시다. 도봉산, 수락산, 사패산 등 등산 코스가 여러 곳 있고, 하천
산책로 정비가 매우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어지간한 것들은 다 있어서
의정부에 머무르며 사는 데에 불편한 건 없다. 하지만 진짜 특색이 참
없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솔직히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특색 있는 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오직 부대찌개 뿐이다. 부대찌개는 의정부 대표 음식이자
의정부 시민들도 매우 좋아하고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딱 이것 뿐이다.
의정부는 뉴스에 잘 나오지 않는 지역이다. 뉴스에 잘 안 나오는 지역이라는
것은 그만큼 조용히 살기 좋다는 의미다. 뉴스에 보도되는 일은 좋은 쪽보다
나쁜 쪽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의정부가 마지막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언제였을까?
의정부가 매우 평화로워지고 뉴스에 참 보도 안 되는 지역이 된 지 꽤 되었다.
한때는 의정부도 중앙 뉴스에 잊을 만하면 이름이 등장하는 도시였다. 내가
의정부에서 살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부터 떠올려보면 대표적으로 의정부
경전철이 있었다. 의정부가 전국민 머리에서 지워질 즈음이 되면 꼭 의정부
경전철이 고장나서 전국 뉴스에 보도되었다. 의정부 경전철이 의정부를 알리는
데에 참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이 의정부 경전철도 요즘은 별 사고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거라고는 가끔 의정부 중랑천에 멧돼지 출몰했다는 뉴스
정도였다. 날씨조차도 의정부는 전국 뉴스에 보도되는 일이 없다. 날씨조차도
딱히 특색 없고 평화로운 곳이 바로 의정부다. 의정부 남쪽은 도봉산과
수락산이 커다란 방벽을 이루고 있고,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의 중랑천 옆 좁은
평지가 서울과 의정부을 연결하는 길목 역할을 하고 있다. 도봉산 쪽은 눈도
무섭게 내리고 비도 무섭게 내리는 일이 조금 있다. 하지만 이 비구름 눈구름이
도봉구에서 다 쏟고 도봉산과 수락산 방벽을 넘어서 의정부 올 때는 힘이
없다.
그러니 기껏해야 306 보충대 폐지, 의정부 경전철 운행 초기
정도이었을까?
아니, 하나 더 있다.
바로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행복로 방향 역전근린공원 중국 기증 안중근
동상이다.
2017년 봄이었다. 중국이 기증한 안중근 동상이 의정부역 역전에 세워진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때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안중근 동상은 중국 민간단체인 察哈爾 차하얼 학회에서 의정부에 기증한
동상이다. 이 당시 가장 먼저 왜 중국이 안중근 동상을 제작해서 우리나라에
기증하냐고 논란이 있었다. 대체 저의가 뭐냐는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차하얼
학회가 의정부시에 기증한 동상인데, 왜 의정부시에 기증했는지 이유가
무엇이고, 더 나아가 제작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먼저 의정부시는 안중근 의사와 아무 상관없는 도시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사람이고, 의정부와 관련된 점을 딱히 찾을 수 없다. 태조 이성계는 의정부에
잠깐 머물렀다 갔다고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의정부에 머문 적이 있는지나
모르겠다. 안중근 의사는 의정부와 전혀 관련없는 인물인데 뜬금없이 의정부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것도 한국인들이 스스로 동상 건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작해 세운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중국이 기증한
동상이었다.
2018년 11월 22일 안중근 동상 제막식에서 김진표 국회의원이 축사를 통해
밝힌 내용에 의하면 의정부시에 안중근 동상이 세워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재임 중 첫 중국 방문에서 시진핑 주석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하얼빈역에 제막하는 것을 협의했다. 이때 중국
시진핑 주석은 한팡민 차하얼학회 대표에게 한팡민 대표는 안중근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 박사를 받았으니 안중근 의사 동상을 하얼빈역에 제막하는 일은
한팡민 대표가 맡아서 하라고 명했고, 후에 안병용 당시 의정부 시장이 안중근
동상 하얼빈역 제막 소식을 듣고 중국을 방문해서 한팡민 대표 및 중국의 여러
기관과 부서를 설득해서 의정부시가 안중근 동상을 기증받았다.
중국에서 제작해서 기증한 안중근 의사 동상은 2017년 5월 11일에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이 동상이 의정부에 도착한 것은 8월이었다. 중국에서 제작한 안중근
동상 모습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매우 크게 충격받았다.
한국의 위인 동상들은 자세가 대체로 경직되어 있다. 머리와 가슴팍까지만
사진으로 촬영하면 영락없는 영정 사진인 자세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제작한 안중근 동상은 공산주의 국가답게 기존 한국의 위인 동상들과 달리
엄청나게 역동적인 포즈를 뽐내고 있었다.
중국에서 제작한 안중근 동상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달려가며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는 형상이다. 한국에서 한국인이 제작했다면
거의 100% 차렷 자세인 안중근 동상이었을 건데, 중국에서 제작한 안중근
동상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역시 이런 선전물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몇십 배 더 발전했고 자극적으로 잘 만든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문제는 너무 역동적인 포즈로 인해 이번에는 고증 오류를 뛰어넘어 역사왜곡
수준의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는 미리 자리를 잡고 있다가 권총을 꺼내서 저격했다. 상당히 경직된 자세에
가까웠다. 이게 당연한 것이, 이토 히로부미 같은 정부 핵심 인사에 대한
경호가 없었을 리 없다. 경호가 삼엄한 건 당연하고, 여기에 환영 인파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달려가며 권총을 뽑아 저격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저격할 때 꼭 달려가며 품에서 권총을 뽑아서 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 비슷하게 일어난 사건이 있다. 바로 1차세계대전의 시발점인 사라예보
사건이다. 그런데 사라예보 사건은 진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마차가
방향을 돌리지 못해서 라틴 다리 근처에서 우왕좌왕할 때 근처에 있던 가브릴로
프란치프가 우연히 이를 목격하고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사라예보 사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암살당한 사건은 우연이 겹쳤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가브릴로 프란치프가 좀 역동적인 자세를 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달려가서 쏘는 자세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달려가서 쏘는
자세의 안중근 의사 모습은 거의 역사 왜곡 수준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여기에서부터 이 동상이 고증 오류이고, 얼굴 생김새도 안중근 의사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게다가 구조물에 새겨진 내용에서도 오류가
발견되어 문제가 되었다.
결국 안중근 동상은 2017년에 의정부에 도착했지만 제막식은 2018년 11월
22일에 열렸다. 이 기간 동안 안중근 의사 동상은 하얀 천에 덮혀 있었고, 가끔
천이 걷혀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안중근 동상 주변에 있는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설치배경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 동상은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 주석의 한-중
우호에 대한 큰 관심 속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제작한 동상으로 외교-국제관계
씽크탱크인 차하얼학회에서 의정부시에 기증하여 이 자리에 동상을
세우다.
의정부시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을 연구하고 추모하는 활동을 추진하여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후대에 널리 알려 동양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동상은 중화인민공화국 조각가 최우 선생께서 제악하였다.
여전히 안중근 동상 근처에 있는 설치 배경 안내문을 읽어보면 뭔가 묘하게
이상하다. 한국어이기는 한데 한국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이 쓴 건지
의문이 조금 든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행복로 방향 역전근린공원 중국 기증 안중근 동상은
중국인 조각가 추이위 崔宇 가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안중근 동상은 너비
1.3m, 길이 3.7m, 높이 2.5m이며, 재질은 청동이다.
의정부역에 왔다면 한때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중국에서 기증한 안중근
동상을 잠시 한 번 볼 만 하다. 논란을 떠나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상당히
역동적인 자세의 동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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