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국보 제31호 첨성대

우리나라 유적 중 상상과 실물의 괴리가 가장 큰 곳은 어디일까?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유적을 간접적으로 접한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배우는 것도 있고, 여러 콘텐츠를 통해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한국 유적은 대체로 간접적으로 접하고 나서 상상하는 것과 실물의 괴리가 상당히 큰 편이다. 여러 차례 전란으로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과거 한반도에도 목조 건물이 많았지만, 전란의 화마가 한반도를 덮칠 때마다 무더기로 잿더미가 되었다. 전란의 화마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생들이 특히 불교 문화재에 대해 탈레반, IS 못지 않은 테러를 가한 덕에 무수히 많은 유적이 소실되었다.

우리나라 속담 중 못난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도 보면 정말 못난 소나무가 선산 지키고 있는 꼴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전쟁이 발발하면 아무래도 거대한 건물이 작은 건물보다 훨씬 중요한 공격 대상이 된다. 석조 건축물도 전쟁이 발발하면 무너지고 파괴되기 마련인데 목조 건축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적이 시원찮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별 볼 일 없는 유적을 가지고 온갖 의미를 부여하니 일반인들이 한국의 유적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하고 나서 상상하는 것과 실물의 괴리감은 상당하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이러한 괴리감은 국내여행은 볼 거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온갖 미사여구와 엄청난 의미 부여에 실컷 기대하고 직접 유적을 가서 봤더니 볼품없고 형편없고 볼 거 하나도 없어서 실망과 허탈감을 넘어 분노하게 된다. 말은 거짓도 많지만 돈은 거짓이 없다. 입으로야 너무 좋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다음 여행은 국내 유적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해외 여행을 계획한다. 한국인들의 자국 비하 특성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형편없는 것을 과대광고해놨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관광지 조성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요즘 과거 성터, 관아지, 향교, 서원 등을 복원해 관광지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꽤 많이 보인다. 문제는 이런 관광지가 유치해야 하는 관광객은 대체로 수도권 사람들인데, 수도권 사람들에게 이런 유적 관광지의 기준은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여러 궁궐들, 그리고 수원 화성이다. 그러니 기껏 많은 지역 예산 들여서 복원하고 관광지화해봐야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여기에 게거품 물고 반박하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있는 사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화려한 신라 금관, 백제 금동대향로, 고려 청자 같은 거 보면 좋아한다. 학자들은 은진미륵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못 생겼다고 비난하기 바쁘지만, 일반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매우 사랑한다. 되도 않은 볼품 없는 것에 과도한 의미 부여한 학자들이 오히려 일반인들의 한국 비하 성향을 부추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유적 중 상상과 실물의 괴리가 가장 큰 곳은 어디일까?

이 부문에서는 경주 첨성대를 따라올 곳이 과연 있을까요?

경주 첨성대보다 상상과 실물의 괴리가 큰 유적은 우리나라에 없을 가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 기술의 상징이며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현존하는 천문대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엄청나게 자랑한다. 지폐 도안에 등장한 적도 있고, 우표로도 있었다. 더욱이 첨성대는 무려 국보 제31호다. 첨성대에 대한 온갖 장황한 설명과 미사여구, 찬양은 너무 많고 무지 흔하고, 심지어 국사 시간에는 주입식으로 암기해야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실제 첨성대는 매우 보잘 것 없다. 과학적으로 굉장해서 감탄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보자마자 입이 쩌억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첨성대를 실제 보면 이것에 대한 온갖 찬양과 미사여구를 대체 왜 그렇게 강제로 외우라고 시켰는지 어이가 없어지게 만든다.

수학여행 때 경주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 첨성대는 버스로 휙 지나가면서 봤다. 버스에서 본 첨성대는 너무 볼품없었다. 너무 볼품없는 나머지 경주 여행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인식을 제대로 심어주었다. 분명히 불국사와 석굴암은 재미있고 멋졌는데 첨성대 하나가 그동안 학교에서 강제로 외워야 했던 내용을 대체 왜 외워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게 하며 경주는 이번에 수학여행으로 온 것으로 영원히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경주 야경 추천 여행지 첨성대


경주 여행을 다시 갔을 때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첨성대까지 다시 가게 되었다. 저녁에 도착하자 첨성대에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역시 족보 있는 관광 도시 경주는 다르네요!

첨성대에 분홍색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첨성대가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첨성대를 보러 온 사람들 모두 첨성대에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첨성대가 우리나라 유적 중 상상과 실물의 괴리가 가장 큰 유적이 아니라 예쁘게 사진 잘 나오는 인스타그램 사진 맛집이었다.

"역시 경주는 뭔가 다르구나."

경주 여행을 하면서 경주가 매우 뿌리 깊은 관광 도시라고 느끼며 다른 도시들과 관광 산업 수준이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는데 첨성대도 마찬가지였다. 타지역이었다면 어떻게든 역사가 어쩌구 과학이 어쩌구 하며 가치 있는 유적으로 꾸미려고만 노력했을 거였다. 그랬다면 오늘도 첨성대를 찾아온 사람들은 또 엄청나게 실망했겠지. 그러나 경주는 첨성대에 조명을 예쁘게 잘 설치해서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사진을 찍는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경주 첨성대는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서기 632년부터 647년까지 재위한 선덕여왕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9m다.

이런 게 뭐가 소용있나요?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인생 살아가는 데에 아무 상관 없다. 오히려 첨성대가 가진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기록하는 예쁜 사진 남기는 명소 역할을 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 아무리 긴 말로 장황하게 찬양해봐야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있는 대로 보고 있는 대로 잘 가꾸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감동과 좋은 추억을 남긴다.

수학여행때 보고 크게 실망했던 첨성대가 이번에는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좋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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