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허무 속에서 만난 두 사람
## 1.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
뉴스에서는 연일 청년 완전 취업을 떠들었다. 아나운서는 웃는 얼굴로
실업률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고 말했다. 스즈키는 그 숫자를 공사장
컨테이너 안, 낡아빠진 텔레비전으로 흘려보았다. 안전화를 벗어던진 발이
시멘트 가루로 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이 완전 고용의 나라에서 몇 안 되는 취업 실패자였다. 더 우스운 건,
한때 명문대의 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도서관
열람실 구석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던 청년, 교수들이 입을 모아
유망하다고 말하던 학생. 그런 그가 지금은 공사장에서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이력서를 백 번 넘게 넣고 백 번 넘게 떨어진 후, 스즈키는 이력서 쓰기를
그만두었다. 졸업식날, 그는 졸업식장에 가지 않았다. 굴욕감을 참을 수
없었다. 매일 그것은 운이라 치부할 수 없는 너의 결함이라고 뉴스는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취방을 비우고 전혀 다른 도시로 떠났다. 책들을 묶어서
버리며 그의 과거도 거기에 함께 묶어서 버렸다.
의미. 스즈키는 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헛웃음이 났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그 많은 위대한 사상도, 아름다운 문장도, 지금 이 순간의 그에게는 아무 힘이
없었다. 철근은 무겁고 시멘트는 딱딱하게 굳는다. 월급날은 돌아온다.
그뿐이었다.
퇴근하면 파칭코였다. 어제와 다른 자리에 앉아, 어제와 똑같은 손짓으로
손잡이를 당겼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었다. 소음과 불빛 속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다음은 공원이었다. 편의점에서 산 술을 벤치에서
마셨다. 어제는 아사히, 오늘은 에비스, 내일은 또 다른 무언가일 터였다.
종류는 상관없었다. 몸이 무뎌지고 머릿속이 흐려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잠들었다. 다음 날이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들. 스즈키는 그 사실이 오히려 편안했다.
그날 밤도 다르지 않았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던 스즈키는
맞은편 벤치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우는
여자였다.
'술맛 떨어지게.'
스즈키는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슬픔도 위로도 어차피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스즈키는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날, 스즈키는 2층 높이 철골 위에서 자재를 날랐다. 바람이 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먼지가 구름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산뜻했다. 죽으면 저 먼지들과
함께하지 않을까.
스즈키는 발을 헛디뎠다. 아니, 헛디딘 척했다. 그 경계가 스즈키 자신에게도
분명하지 않았다. 몸이 허공으로 기울었다.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어둠이었다.
## 2. 허무 속에서 만난 사람
정신이 들었을 때, 스즈키는 하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살아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스즈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옆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
어젯밤 공원에서 울고 있던 바로 그 여자였다.
여자의 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이 침대 곁에서 울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대학 떨어진 게 끝이 아니잖니. 재수해서 가면 되는데, 왜, 왜 이런
짓을..."
여자는 아무 대답 없이 창밖만 보고 있었다. 스즈키는 그 대화를 듣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 여자가 가고 싶어 했다는 그 대학은 낯익은 이름이었다. 자신이
졸업한 바로 그 대학이었다.
부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먼저 정적을 깬 건 여자 쪽이었다.
"저기... 어제 공원에 있었죠? 벤치에서."
스즈키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피식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신기하네요, 이런 데서 다시 만나고. 사야카예요."
"스즈키."
두 사람은 어색하게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사야카는 창밖을 응시하며 담담히
말했다.
"저는 실패한 인생이에요. 재수해서 그 대학에 가봤자 이미 더러워진
꿈이잖아요. 의미 없어요."
"그딴 거 없어도 돼요." 스즈키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 대학, 인생에
아무 쓸모없어요."
사야카가 발끈해서 스즈키를 쳐다봤다.
"당신 같은 노가다 잡부가 뭘 안다고 그래요?"
"내가 거기 졸업했으니까 아는 거예요."
"풋." 사야카가 코웃음 쳤다. "당신 같은 사람이 거기 갔다면, 교정 바닥
포장하러 갔겠죠."
스즈키는 순간 욱해서 지갑으로 손을 가져가려다 멈췄다. 그 학생증, 진작에
가위로 잘게 잘라서 버렸다. 스즈키는 순간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졸업증명서 PDF가 떠올랐다. 스즈키는 스마트폰에서 졸업증명서 PDF를 띄워서
사야카 앞에 내밀었다. 사야카의 눈이 스마트폰 화면과 스즈키의 얼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사야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병실에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딱히 할 일 없는 입원
생활, 둘은 서로의 무의미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퇴원하면..." 사야카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실패한 인생, 빨리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죽으면 풀 한 포기의 구성 입자라도 되겠죠." 스즈키가 사야카의 혼잣말에
응수했다.
사야카는 스즈키를 돌아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같이 갈래요?"
정적이 흘렀다.
"죽으러요." 사야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지난번처럼 어설프게 실패하고
싶지 않아요. 둘이 하면 확실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스즈키는 사야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귀자는 것도, 위로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실무적인 제안이었다. 여행 동행을 구하듯이.
"좋아요."
## 3. 끝없는 허무의 끝을 찾기 위한 여행
퇴원 후, 두 사람은 각자 짐을 꾸려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해진 건 단 하나, 죽기 좋은 곳을 찾는다는 것뿐이었다.
첫날부터 둘은 미친 듯이 굴었다. 술을 원 없이 마셨고, 밤거리를 이유 없이
내달렸고, 강물에 옷을 입은 채 뛰어들었고, 인적 없는 다리 위에서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죽을 건데. 둘의 각각의 행동들은 둘에게 그
어떤 의미도 있지 않았다. 그저 깨져버린 그릇 속 물처럼 아무렇게나 감정이
흐른 결과였다. 깨진 그릇 조각들 사이에 고인 물이 조금만 흔들려도
흘러넘치듯, 흘러넘친 물이 아무렇게나 퍼져나가듯 둘의 감정은 아무렇게나
흐르고 퍼지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먹는 컵라면. "상관 없잖아." 스즈키는 나무 젓가락을 보더니 위
아래를 바꿔서 먹기 시작한다. 사야카는 스즈키를 보더니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꺾어서 먹기 시작한다. "웃겨." 반으로 부러진 젓가락으로 몇 입 집어먹던
사야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으로 면을 집어먹고는 손을 옷에 쓱쓱
닦는다.
둘은 강으로 갔다.
"으하하!" 사야카가 강물 속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해요!"
스즈키도 따라 웃었다. 아주 잠깐은, 정말로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젖은 옷을 입은 채 둑에 걸터앉아 몸을 떨 즈음이면, 그 짧았던 웃음은 이미
사라지고 더 깊은 허무만이 밀려들었다.
"결국 이것도 다 의미 없어." 스즈키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중얼거렸다. "소리
지르고 물에 뛰어든다고 뭐가 달라지나. 잠깐 잊었다가 다시 떠오를
뿐이지."
사야카는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방금 즐거웠던 건 다
가짜였어요. 진짜 저는 지금 이렇게 텅 빈 사람이에요."
사야카는 스즈키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동의했다. 스즈키가 세상은
무의미하다고 하면 사야카도 그렇다고 했다. 스즈키가 방금 느낀 후련함조차
거짓이라고 하면, 사야카도 자신이 느꼈던 즐거움을 스스로 부정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잤는지, 다치지는
않았는지. 그것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라기보다, 이 여행을 끝까지 함께
완주하기 위한 배려에 가까웠다. 둘 다 목적지에 닿기 전에 지치거나 다쳐서는
안 되었으니까.
둘은 걸으면서 끊임없이 장소를 평가했다.
"저 절벽은 너무 빨리 발견되겠다. 관광객이 많아서."
"저 철길은 민폐 아니에요? 기관사한테 못 할 짓이지."
"저 산은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이는데."
정해진 경로 없이,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품은 여행이 그렇게 이어졌다.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 두 사람은 어느 바닷가 마을에 다다랐다.
허름한 여인숙에 방을 잡고, 짐을 풀고 나와 숙소 앞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바다 냄새가 났다. 사야카는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 말이 없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민폐 안 끼치고 죽을 곳을 찾는 것...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이 순간, 사야카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지나치게 찬란하고 눈부셨다. 노을에
물든 바다는 주황빛과 분홍빛으로 반짝였고, 지나가는 연인들은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고, 저 멀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리알처럼 쨍하게 울렸다. 모든
빛깔이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게, 모든 소리가 날카롭게 사야카를 찔러댔다.
세상 모든 것이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데, 오직 자신만이 그 그림 속에서 홀로
흑백으로 도려내진 존재 같았다.
사야카는 울음을 터뜨렸다.
스즈키는 그런 사야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산에 가면 또 모르지. 바닷가에 없다고 벌써 실망하지 말아요."
스즈키에게 비치는 세상은 사야카와는 정반대였다. 노을도 바다도 웃는
연인들도, 그의 눈에는 전부 뭉개진 흑백의 얼룩으로만 보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파도 소리도, 먼 곳에서 웅웅거리는 잡음처럼 뭉개져 들렸다. 색도
소리도 잃어버린 세계에서, 스즈키는 그저 담담히 사야카의 울음을 지켜볼
뿐이었다.
"실컷 울어요." 스즈키가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상관없잖아요. 무가치한
세상인데."
사야카는 울음을 뚝 그치고 스즈키를 한 번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 4. 각자의 허무의 끝
다음 날, 두 사람은 방파제 테트라포드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파도가
발밑에서 부서졌다.
"저기..." 사야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스즈키가 사야카를 돌아보았다.
"눈 감고 찻길 건너는 건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사야카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제 바다에서 목 터지게 소리 지른 건, 진짜 즐거웠어요."
스즈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이튿날 아침, 사야카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야... 미안해, 돈도 몰래 가지고 나오고.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차비가 없어서."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돈을 부쳐주겠다는
말이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온 걸 확인한 사야카는 스즈키를 찾아가 물었다.
"저기, 나랑 같이 돌아가지 않을래요?"
스즈키가 사야카를 바라보았다.
"같이 돌아가면... 한 번쯤 연인처럼 지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부모님한테는,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 나온 사람이고 공부 가르쳐주려고
만난다고 하면 이상하게 안 볼 거예요. 그러고 나서 같이 도쿄로 가요. 둘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스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타인은 지옥이에요."
사야카의 얼굴이 굳었다.
"저도 갈 곳을 찾았어요." 스즈키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 헤어질
시간이에요."
사야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내 다물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사야카와 헤어진 스즈키는, 밤이 되자 홀로 바다로 향했다. 방파제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스즈키는 테트라포드 위에 서서 중얼거렸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쁨이야."
바람이 불었다.
"나는 기뻐하는 인간이야."
스즈키는 테트라포드 틈 사이로 사라졌다. 테트라포트 아래에서 솟아나오는
웅웅거리는 소리, 뜨겁고 습한 공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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