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시로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다. 강원도 속초시는 매우 예전에 가봤던
곳이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이라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3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하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 속초는 유명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크게 유명한 지역은
아니었다. 동해 바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이 강릉으로 여행을 가던
시절이었고, 속초는 동해안 여행을 조금 해본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가까웠다.
속초는 오히려 바다보다는 산으로 더 유명했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및
비선대, 흔들바위로 이어지는 설악동을 가려면 속초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속초는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봐도 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수혜를 제대로 본 도시다. 과거에는 설악산 가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고, 동해안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 중 강릉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서 가던 사람들이나 가던 곳이었다. 속초는 속초를 한 번 가본 사람들은
속초에 반해서 계속 속초를 가지만, 안 가본 사람은 계속 안 가는 곳, 그리고
설악산 때문에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까지 버스로
2시간 1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속초시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에는 속초시를 가본 적이
없지만,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속초로
여행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전국민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속초 여행을 갔을 때였다. 속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속초는 언젠가 전국민적인 관광지로 무조건 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도보여행 및 배낭여행 스타일로 여행하기 상당히 좋은 도시라는
점이었다. 속초시는 면적이 크지 않다. 속초시는 매우 작은 도시이지만 좁은 지역
안에 관광자원이 상당히 많다. 설악산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면 느긋하게
걸어다니며 돌아다녀도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도시다.
한국 여행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보여행 및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기 매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려고 하면 버스
시간이 안 맞고 버스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일정을 진행하기 어려운
곳이 태반이다. 대중교통이 좋다고 해도 관광지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동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지역이 많다. 관광지들이 모여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돌아다니기 좋은 지역이 우리나라에 진짜 얼마 없다.
사족으로 요즘 여러 지자체들이 관광산업을 육성하려고 노력중인데,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싶다면 대중교통 문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 뭔가 거창한 것을
짓고 큰 돈 써가며 천편일률적인 축제를 만들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를 한 대라도 더 돌리는 게 낫다. 주머니 사정 가벼운
청년층이 여행을 많이 와줘야 관광업이 그만큼 성장하고 지역 사회에도 활기가
도는데, 청년층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저렴한 여행 비용이 필수이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교통 문제다. 버스 및 기차 타고 온 여행객들에게 왔으니
이제부터 택시 타고 이동하거나 차량을 렌트해서 다니라고 하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국내여행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숙박비와 교통비에서 최소한 교통비
정도는 각 지자체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예상대로 속초는 관광도시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버스로 속초로 훌쩍 떠난 후 속초에서 걸어다니며 놀아도 되고, 9번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도 된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없이 여행 다녀오기 좋은 조건에
무려 서울 및 수도권과는 완전히 다른 동해안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더해지며
너도 나도 속초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속초가 강원도 부동산의 대표 주자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지역이다. 예전과는 완전히 변했다.
속초 여행은 원래 2박 3일로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안 따라줘서 1박
2일로 일정을 바꾸었다.
여행 둘째날이었다. 청초호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청초호에는 청초호수공원이
있다. 전날 청초호수공원도 가면 예쁜 야경을 볼 수 있다고 추천받았지만 그때는
힘들어서 가지 못했다. 아침에라도 가서 보자는 마음에 속초시 교동
청초호수공원으로 갔다.
청초호수공원에 도착해서 조금 쉬려고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였다.
청초호수공원에는 맞은편 청호동을 살펴볼 수 있는 쌍안경이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다.
청초호수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속초시 조양동, 청호동은 높은 아파트가 계속
건설중이었다.
'속초 부동산 뜨겁다고 하는데 진짜 장난 아니구나.'
속초 부동산이 뜨겁다는 뉴스는 여러 번 봤다. 뉴스 기사로 봤을 때는
그러려니하고 넘어갔는데 실제 와서 보니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아예
다른 도시로 바뀌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곳곳에 이미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있었고, 고층 아파트가 건설중이었다. 속초는 강원도 동해안 대도시로
급성장중이었다.
내 눈에는 이러한 속초의 변화가 너무 멋져 보였다. 발전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기존 주민들에게 '집 대 집'의 문제로 제대로 보상해주기만 한다면 당연히
발전하는 게 훨씬 좋다. 보상받은 주민들이 원래 살던 집보다 시설이 훨씬 더
좋은 집에서 더욱 편하고 쾌적하게 거주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고 상권이 발달한다면 당연히 박수쳐주고 본인 미적 기준을 떠나서
아름답다고 봐야 한다. 실제 당사자들인 주민들이 좋아졌다면 그건 좋은
거다.
쌍안경으로 청호동과 조양동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청호동에 있는 이마트 속초점이 보였다.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진짜 절묘한 곳에 잘 지었네."
이런 것을 선견지명이라고 하는 걸까. 속초 이마트가 저기 세워졌을 때는 저
동네도 특별하지는 않은 동네였을 거다. 속초 이마트가 생길 당시에는 저기가
그래도 땅값이 저렴해서 저 자리에 이마트가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 예전 속초를
떠올려보면 시내 중심가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과 속초시청이 있는 지역이었을
거다. 교동, 금호동, 동명동 일대가 아마 중심지였을 거다. 어느 지역이든
중심가는 지대가 비싸고 여러 이권이 얽혀 있다. 이마트도 처음에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이마트를 짓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쪽이 속초 대중교통의 요지인 데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이마트를 세우면 시외버스 이용객들이 이마트로 꽤 많이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매우 어려웠을 거라 청호동에 세운 것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보면 아주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았다. 쌍안경으로 이마트
속초점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저 이마트 팔면 속초에 이마트 2개는 더 짓겠다는
생각이었다. 속초 부동산 시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쌍안경으로 본
청초호 너머 청호동, 조양동은 완전히 새로운 지역으로 탈바꿈중이었다.
참고로 이마트 속초점 개점일은 2003년 11월 20일이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한참 전의 일이다.
청초호수공원에서 이마트를 찾는 것은 숨은 이마트 찾기까지는 아니었다.
맨눈으로 봐도 이마트는 잘 보였다. 그러나 쌍안경으로 이마트를 찾는 건
맨눈으로 찾는 것보다 어려웠다. 청초호수공원 가면 설치되어 있는 무료
쌍안경으로 맞은편 이마트 찾기를 한 번 해볼 만 하다.
누가 저 자리에 이마트를 짓자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선견지명이 뛰어난 사람이었을 거다.